객체지향 패러다임의 목적은 현실 세계를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 세계를 기반으로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는 것이다. 따라서 소프트웨어 세계에서 살아가는 객체는 현실 세계에 존재하는 객체와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이는 것이 일반적이다.
- 객체는 상태를 가지며, 상태는 변경 가능하다.
- 객체의 상태를 변경시키는 것은 객체의 행동이다.
- 행동의 결과는 상태에 의존적이며 상태를 이용해 서술할 수 있다.
- 행동의 순서가 결과에 영향을 미친다.
- 앨리스는 어떤 상태에 있더라도 유일하게 식별 가능하다.
객체의 다양한 특성을 효과적으로 설명하기 위해서는 객체를 상태(state)
, 행동(behavior)
, 식별자(identity)
를 지닌 실체로 보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다.
객체란 식별 가능한 개체 또는 사물이다. 객체는 자동차처럼 만질 수 있는 구체적인 사물일 수도 있고, 시간처럼 추상적인 개념일 수도 있다. 객체는 구별 가능한 식별자, 특징적인 행동, 변경 가능한 상태를 가진다. 소프트웨어 안에서 객체는 저장된 상태와 실행 가능한 코드를 통해 구현된다.
상태는 특정 시점에 객체가 가지고 있는 정보의 집합으로 객체의 구조적 특징을 표현한다. 객체의 상태는 객체에 존재하는 정적인 프로퍼티와 동적인 프로퍼티 값으로 구성된다. 객체의 프로퍼티는 단순한 값과 다른 객체를 참조하는 링크로 구분할 수 있다.
객체가 주변 환경과의 상호작용에 어떻게 반응하는가는 그 시점까지 객체에 어떤 일이 발생했느냐에 좌우된다. 어떤 행동의 결과는 과거에 어떤 행동들이 일어났었느냐에 의존한다.
일반적으로 과거에 발생한 행동의 이력을 통해 현재 발생한 행동의 결과를 판단하는 방식은 복잡하고 번거로우며 이해하기 어렵다. 따라서 인간은 행동의 과정과 결과를 단순하게 기술하기 위해 상태라는 개념을 고안했다.
상태를 이용하면 과거의 모든 행동 이력을 설명하지 않고도 행동의 결과를 쉽게 예측하고 설명할 수 있다. 앨리스가 과거에 어떤 행동을 했었는지 모르더라도 앨리스의 키만 알면 문을 통과할 수 있는지 여부를 쉽게 판단할 수 있다.
상태를 이용하면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현재를 기반으로 객체의 행동 방식을 이해할 수 있다. 상태는 근본적으로 세상의 복잡성을 완화하고 인지 과부하를 줄일 수 있는 중요한 개념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객체인 것은 아니다. 분명하게 인식할 수 있음에도 객체의 영역에 포함시킬 수 없는 것들도 존재한다. 숫자, 문자열, 양, 속도, 시간, 날짜, 참/거짓과 같은 단순한 값들은 객체가 아니다. 단순한 값들은 그 자체로 독립적인 의미를 가지기보다는 다른 객체의 특성을 표현하는 데 사용된다. 다시 말해 다른 객체의 상태를 표현하기 위해 사용된다.
때로는 단순한 값이 아니라 객체를 사용해 다른 객체의 상태를 표현해야 할 때가 있다. 앨리스가 현재 음료를 들고 있는 상태인지를 표현하고 싶다면, 가장 직관적인 방법은 앨리스의 상태 일부를 음료라는 객체를 이용해 표현하는 것이다. 앨리스가 음료를 들고 있는지 여부는 앨리스라는 객체가 음료라는 객체와 연결돼 있는지 여부로 표현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모든 객체의 상태는 단순한 값과 객체의 조합으로 표현할 수 있다. 이때 객체의 상태를 구성하는 모든 특징을 통틀어 객체의 프로퍼티(property)
라고 한다. 일반적으로 프로퍼티는 변경되지 않고 고정되기 때문에 '정적'이다. 반면 프로퍼티 값(property value)
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변경되기 때문에 '동적'이다.
객체와 객체 사이의 의미 있는 연결을 링크(link)
라고 한다. 객체와 객체 사이에는 링크가 존재해야만 요청을 보내고 받을 수 있다. 링크는 객체가 다른 객체를 참조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것은 일반적으로 한 객체가 다른 객체의 식별자를 알고 있는 것으로 표현된다. 객체 간의 선으로 표현되는 링크와 달리 객체를 구성하는 단순한 값은 속성(attribute)
이라고 한다.
객체는 자율적인 존재다. 객체지향의 세계에서 객체는 다른 객체의 상태에 직접적으로 접근할 수도, 상태를 변경할 수도 없다. 자율적인 객체는 스스로 자신의 상태를 책임져야 한다. 외부의 객체가 직접적으로 객체의 상태를 주무를 수 없다면 간접적으로 객체의 상태를 변경하거나 조회할 수 있는 방법이 필요하다.
행동이란 외부의 요청 또는 수신된 메시지에 응답하기 위해 동작하고 반응하는 활동이다. 행동의 결과로 객체는 자신의 상태를 변경하거나 다른 객체에게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 객체는 행동을 통해 다른 객체와의 협력에 참여하므로 행동은 외부에 가시적이어야 한다.
객체가 취하는 행동은 객체 자신의 상태를 변경시킨다. 객체의 행동에 의해 객체의 상태가 변경된다는 것은 행동이 부수 효과(side effect)
를 초래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부수 효과의 개념을 이용하면 객체의 행동을 상태 변경의 관점에서 쉽게 기술할 수 있다.
객체의 행동은 객체의 상태를 변경시키지만 행동의 결과는 객체의 상태에 의존적이다. 음료를 마신 후의 앨리스의 키는 음료를 마시기 전의 앨리스의 키보다 작아져야 한다. 이것은 음료를 마시는 행동의 결과가 앨리스의 키에 의존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상태와 행동 사이에는 다음과 같은 관계가 있음을 알 수 있다.
- 객체의 행동은 상태에 영향을 받는다(상호작용이 현재의 상태에 어떤 방식으로 의존하는가).
- 객체의 행동은 상태를 변경시킨다(상호작용이 어떻게 현재의 상태를 변경시키는가).
객체는 다른 객체와 적극적으로 상호작용하며 '협력하는 객체들의 공동체'에 참여하기 위해 노력한다. 객체가 다른 객체와 협력하는 유일한 방법은 다른 객체에게 요청을 보내는 것이다. 요청을 수신한 객체는 요청을 처리하기 위해 적절한 방법에 따라 행동한다.
객체는 협력에 참여하는 과정에서 자기 자신의 상태뿐만 아니라 다른 객체의 상태 변경을 유발할 수도 있다. 앨리스가 음료를 마시면 앨리스 자신의 키가 작아지는 동시에 앨리스가 먹은 양만큼 음료의 양이 줄어야 한다. 따라서 음료를 마시는 앨리스의 행동은 자기 자신뿐만 아니라 음료의 상태 변경도 유발한다.
객체의 행동으로 인해 발생하는 결과는 두 가지 관점에서 설명할 수 있다. 객체의 행동은 이 두 가지 관점의 부수효과를 명확하게 서술해야 한다.
- 객체 자신의 상태 변경
- 행동 내에서 협력하는 다른 객체에 대한 메시지 전송
객체지향의 세계에서 모든 객체는 자신의 상태를 스스로 관리하는 자율적인 존재다. 앨리스 객체의 키를 작게 만드는 것이 앨리스 자신인 것처럼 음료 객체의 양을 줄이는 것은 음료 자신이어야 한다. 따라서 앨리스는 직접적ㄷ으로 음료의 상태를 변경할 수 없다. 단지 음료에게 자신이 음료를 마셨다는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을 뿐이다. 적절할 정도로 음료의 양을 줄이는 것은 메시지를 전달받은 음료 스스로의 몫이다.
메시지를 앨리스에게 전송하는 객체이건 음료에게 메시지를 전송하는 앨리스 객체이건 메시지 송신자는 메시지 수신자의 상태 변경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한다.
이것이 캡슐화가 의미하는 것이다. 객체는 상태를 캡슐 안에 감춰둔 채 외부로 노출하지 않는다. 객체가 외부에 노출하는 것은 행동뿐이며, 외부에서 객체에 접근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 역시 행동뿐이다.
객체의 행동을 유발하는 것은 외부로부터 전달된 메시지지만 객체의 상태를 변경할지 여부는 객체 스스로 정한다. 사실 객체에게 메시지를 전달하는 외부의 객체는 메시지를 수신하는 객체의 상태가 변경된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한다.
상태를 외부에 노출시키지 않고 행동을 경계로 캡슐화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객체의 자율성을 높인다. 자율적인 객체는 스스로 판단하고 스스로 결정하기 때문에 객체의 자율성이 높아질수록 객체의 지능도 높아진다. 협력에 참여하는 객체들의 지능이 높아질수록 협력은 유연하고 간결해진다.
식별자란 어떤 객체를 다른 객체와 구분하는 데 사용하는 객체의 프로퍼티다. 값은 식별자를 가지지 않기 때문에 상태를 이용한 동등성 검사를 통해 두 인스턴스를 비교해야 한다. 객체는 상태가 변경될 수 있기 때문에 식별자를 이용한 동일성 검사를 통해 두 인스턴스를 비교할 수 있다.
객체란 인간의 인지 능력을 이용해 식별 가능한 경계를 가진 모든 사물을 의미한다. 객체가 식별 가능하다는 것은 객체를 서로 구별할 수 있는 특정한 프로퍼티가 객체 안에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프로퍼티를 식별자라고 한다. 모든 객체는 식별자를 가지며, 이를 이용해 객체를 구별할 수 있다.
모든 객체가 식별자를 가진다는 것은, 반대로 객체가 아닌 단순한 값은 식별자를 가지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값과 객체의 가장 큰 차이점은 값은 식별자를 가지지 않지만 객체는 식별자를 가진다는 점이다.
값(value)
은 숫자, 문자열, 날짜, 시간, 금액 등과 같이 변하지 않는 양을 모델링한다. 흔히 값의 상태는 변하지 않기 때문에 불변 상태(immutable state)
를 가진다고 말한다. 값의 경우 두 인스턴스의 상태가 같다면 두 인스턴스를 같은 것으로 판단한다.
이처럼 상태를 이용해 두 값이 같은지 판단할 수 있는 성질을 동등성(equality)
이라고 한다. 상태를 이용해 동등성을 판단할 수 있는 이유는 값의 상태가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객체(object)
는 시간에 따라 변경되는 상태를 포함하며, 행동을 통해 상태를 변경한다. 따라서 객체는 가변 상태(mutable state)
를 가진다고 말한다. 타입이 같은 두 객체의 상태가 완전히 똑같더라도 두 객체는 독립적인 별개의 객체로 다뤄야 한다.
두 객체의 상태가 다르더라도 식별자가 같다면 두 객체를 같은 객체로 판단할 수 있다. 이처럼 식별자를 기반으로 객체가 같은지를 판단할 수 있는 성질을 동일성(identical)
이라고 한다.
상태를 기반으로 객체의 동일성을 판단할 수 없는 이유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객체의 상태가 변하기 때문이다. 어느 한 시점에 두 객체의 상태가 동일하더라도 한 객체의 상태가 변하는 순간 두 객체는 서로 다른 상태가 되어 버린다. 따라서 상태가 가변적인 두 객체의 동일성을 판단하기 위해서는 상태 변경에 독립적인 별도의 식별자를 이용할 수밖에 없다. 식별자를 지닌 전통적인 의미의 객체를 가리키기 위해 참조 객체(reference object)
, 또는 엔티티(entity)
라는 용어를, 식별자를 가지지 않는 값을 가리키기 위해 값 객체(value object)
라는 용어를 사용하기도 한다.
객체지향의 세계를 창조하는 개발자들의 주된 업무는 객체의 상태를 조회하고 객체의 상태를 변경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객체의 상태를 조회하는 작업을 쿼리(query)
라고 하고 객체의 상태를 변경하는 작업을 명령(command)
이라고 한다.
이것은 객체에 접근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객체가 제공하는 행동뿐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즉, 사용자는 객체가 제공하는 명령 버튼과 쿼리 버튼으로 구성된 인터페이스를 통해서만 객체에 접근할 수 있다.
상태를 먼저 결정하고 행동을 나중에 결정하는 방법은 설계에 나쁜 영향을 끼친다.
- 상태를 먼저 결정할 경우 캡슐화가 저해된다. 상태에 초점을 맞출 경우 상태가 객체 내부로 깔끔하게 캡슐화되지 못하고 공용 인터페이스에 그대로 노출되어버릴 확률이 높아진다.
- 객체를 협력자가 아닌 고립된 섬으로 만든다. 객체가 필요한 이유는 애플리케이션의 문맥 내에서 다른 객체와 협력하기 위해서다. 불행하게도 상태를 먼저 고려하는 방식은 협력이라는 문맥에서 멀리 벗어난 채 객체를 설계하게 함으로써 자연스럽게 협력에 적합하지 못한 객체를 창조하게 된다.
- 객체의 재사용성이 저하된다. 객체의 재사용성은 다양한 협력에 참여할 수 있는 능력에서 나온다. 상태에 초점을 맞춘 객체는 다양한 협력에 참여하기 어렵기 때문에 재사용성이 저하될 수밖에 없다.
객체의 행동은 객체가 협력에 참여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따라서 객체가 적합한지를 결정하는 것은 그 객체의 상태가 아니라 행동이다.
객체지향을 현실 세계의 모방이라고 보는 관점은 객체지향 분석/설계란 현실 세계에 존재하는 다양한 객체를 모방한 후 필요한 부분만 취해 소프트웨어 객체로 구현하는 과정이라고 설명한다. 흔히 객체지향을 현실 세계의 추상화라고도 하는데, 그 안에는 현실 세계를 모방해서 단순화한다는 의미가 숨어 있다. 여기서 추상화(abstraction)
란 실제의 사물에서 자신이 원하는 특성만 취하고 필요 없는 부분을 추려 핵심만 표현하는 행위를 말한다. 이런 관점의 중심에는 객체지향 애플리케이션을 분석하고 설계하고 구현하기 위해서는 현실 세계를 면밀히 관찰하고 그 안에 존재하는 실제 객체들의 특징을 간추리고 요약해서 소프트웨어 객체로 추상화할 수 있는 능력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자리잡고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객체지향 세계는 현실 세계의 단순한 모방이 아니다. 소프트웨어 안에 구현된 상품 객체는 실제 세계의 상품과는 전혀 다른 양상을 띤다. 소프트웨어 상품은 실제 세계의 상품이 하지 못하는 가격 계산과 같은 행동을 스스로 수행할 수 있다. 이것은 소프트웨어 상품이 실제 세계의 상품을 단순화하거나 추상화한 것이 아니라 특성이 전혀 다른 어떤 것임을 의미한다. 이렇게 현실의 객체보다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 객체의 특징을 의인화(anthropomorphism)
라고 부른다.
객체지향의 세계와 현실 세계 사이가 전혀 상관이 없는 것은 아니다. 다만 모방이나 추상화의 수준이 아닌 다른 관점에서 유사성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현실 세계와 객체지향 세계 사이의 관계를 좀 더 정확하게 설명할 수 있는 단어는 은유(metaphor)
다.
은유란 실제로는 적용되지 않는 한 가지 개념을 이용해 다른 개념을 서술하는 대화의 한 형태다. 현실 속의 객체의 의미 일부가 소프트웨어 객체로 전달되기 때문에 프로그램 내의 객체는 현실 속의 객체에 대한 은유다.
은유는 표현적 차이(representational gap)
또는 의미적 차이(semantic gap)
라는 논점과 관련성이 깊다. 여기서 차이란 소프트웨어에 대해 사람들이 생각하는 모습과 실제 소프트웨어 표현 사이의 차이를 말한다. 은유 관계에 있는 실제 객체의 이름을 소프트웨어 객체의 이름으로 사용하면 표현적 차이를 줄여 소프트웨어의 구조를 쉽게 예측할 수 있다. 따라서 소프트웨어 객체에 대한 현실 객체의 은유를 효과적으로 사용할 경우 표현적 차이를 줄일 수 있으며, 이해하기 쉽고 유지보수가 용이한 소프트웨어를 만들 수 있다.